그때 그 시절, 1960년대 문화영화를 아시나요?
- 국가기록원, 「문화영화로 보는 대한민국」 콘텐츠 온라인서비스 -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원장 이소연)은 1960년대 우리나라의 시대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영화를 국가기록원 누리집을 통하여 제공한다.
○ 오는 12월 6일부터 공개하는 기록물은 총 391건으로, 국립영화제작소가 생산한 문화영화와 해설 200건, 제작계획서 191건이다.
○ 정치․사회면의 모습 등을 담고 있으며, 영화배우들이 출연하여 인기를 모은 자료도 포함되어 있어서 재미와 향수를 느끼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 당시 정부는 국립영화제작소를 설치하여 정책홍보가 필요한 경우 문화영화를 적극 활용하였는데, 김희갑, 남정임 등 영화배우들이 출연하여 눈길을 끌었다.
○ 1964년 실시된 미터법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한 ‘미터법을 쓰자’, 1969년 가정의례준칙 제정에 따른 결혼예식간소화 내용을 담은 ‘오붓한 잔치’ 등이 이에 해당된다.(영상 1, 2)
○ ‘팔도강산’과 ‘팔도강산 세계를 간다’는 196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소개하는 영상인데, 비슷한 형식의 속편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큰 흥행을 거두었다.(영상 3)
□ 1960년대 문화영화 제작자들은 우리의 생활풍경이나 문화를 외국에 소개하기 위한 영화를 다수 제작하기도 하였다.
○ 우시장에서 흥정하는 거간꾼들, 장날의 어물전․포목전 모습을 담은 ‘장날풍경’은 정겨운 일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국불교를 다룬 ‘열반’이나,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무용극 ‘초혼’ 등의 영화는 아시아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하였다.(영상 4, 5, 6)
□ 일부 문화영화는 주요한 사건이나 행사를 다루어서 196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1965년 한일회담 조인식을 앞두고 제작된 문화영화 ‘한일회담’ 제작지시서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국민 계몽영화를 제작’한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는데, 문화영화가 지니는 특징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문서 1)
○ 1965년 준공된 ‘자유의 집’ 건축 및 준공식 영상은 분단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자유의 집’은 1970~80년대 남북한 실무회담 장소로 이용되었고, 1998년 신축되었다.(영상 7)
□ 이외에 창덕궁 인정전을 배경으로 안익태가 ‘한국교향환상곡’ 전 악장을 지휘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영상도 볼 수 있다.(영상 8)
□ 이소연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장은 “이번에 제공하는 문화영화를 통하여, 1960년대 시대・생활상을 이해하고 우리나라 영화 발달 과정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붙임 2 |
주요 문화영화 편집영상 내용 |
번호 |
분야 |
관리번호 |
제목 |
영상해설 내용 |
생산연도 | ||||
1 |
사회 |
CEN0002735 |
미터법을 쓰자 |
(02:15~03:22) 어머니 : 너 몇 문 신니? 아들 : 몇 문이 뭐야 엄마? 어머니 : 너 발 크기 말이야. 아들 : 응, 20센티(cm)야 어머니 : 20센티(cm)? 응, 알았어. 아버지 : 아, 여보. 어머니 : 네? 아버지 : 내 것도 하나 사 와야 해. 어머니 : 아, 네. 점원 : 어서 오십시오. 몇 문을 찾으시죠? 어머니 : 20센티(cm)짜리는 없나요? 점원 : 20센티(cm)라... 20센티(cm)짜리는 없는데요. 신발은 모두 문수로 돼있습니다. 몇 살이죠? 어머니 : 저, 열 살이에요. 점원 : 열 살이라...이 정도면 잘 맞습니다. 어머니 : 틀림없겠죠? 점원 : 네, 틀림없습니다. 아버지 : 아하...하 참. 어머니 : 아휴, 글쎄 이 모양이지 뭡니까? 그러나 이 고무신들은 같은 문수이면서도 만드는 공장에 따라 그 크기의 차가 생기는 형편이에요. |
1963 | ||||
2 |
사회 |
CEN0003400 |
오붓한 잔치 |
(00:57~02:22) 여자 : 어쩜 그렇게도 태평하시죠? 우리 결혼식도 한 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남자 : 음 그렇지 않아도 내가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미안하게 됐어. 여자 : 우선 청첩장부터 만들어 보내야 하잖아요. 남자 : 아니 청첩장은 무슨 청첩장이야? 그 고지서 같은걸. 그런 건 보내지 않는 게 좋아요. 언젠가도 내가 말했지만은 결혼식은 되도록 간소하게 하기로 말했잖아. 그냥 친지들에게만 알리고 여자 : 전 반대에요.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을 그렇게 시시하게 넘길 순 없잖아요. 남자 : 이봐 결혼식은 결국 당사자를 위한 것이지. 남의 눈을 위한 결혼식은 아니잖아. 지난번의 우리 약혼 때처럼 친지들만 모아놓고 간단하게 치루니 얼마나 좋았어? 허례허식을 떠나서 실질적인 서약으로 약혼서에다가 건강진단서와 호적등본을 첨부해서 서류만 교환한 것처럼 말이야. 여자 : 약혼이야 이왕 그렇게 한 것이지만 결혼식만은 좀 더 보람 있게 치르자는 거예요. 남자 : 그런 보람을 원한다면 아주 구식 결혼으로 하지 그래 |
1969 |
번호 |
분야 |
관리번호 |
제목 |
영상해설 내용 |
생산연도 | ||||
3 |
문화 |
CEN0003196~CEN0003206 |
팔도강산 |
(33:57~35:10) 둘째 사위 : 장인어른, 이걸로 말입니다. 저기 저기를 보십시오. 저 바다를 보십시오. 지금은 저 저기 바닷물이 들락날락하지만 말입니다. 앞으로 이 둑만 완성되면 저것이 몽땅 논밭이 됩니다. 영감 : 이 사람아, 내가 귀 생기고 이런 소리 처음 듣네. 아니 무슨 수로 이 바다를 막는단 말인가? 어? 글쎄 이 넓은 바다를 말이야. 둘째 사위 : 네. 이번 이 공사만 완성되면 여기서 12만 석이나 곡식이 안 나옵니까? 하여간 이번 이 간척공사 때문에 우리나라의 지도 모양이 싹 변해버린단 말입니다. 영감 : 여보, 그 옛날엔 뽕나무 밭이 변해서 바다가 된다더니만. 이젠 바다가 변해서 옥답이 되는구려. 둘째 사위 : 허허, 좋은 세상이란 말입니다. 부인 : 그래. 영감 : 이 사람아, 그건 그렇고 이 넓은 바다에 물은 무슨 수로 대지? 둘째 사위 : 그,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둘째 사위 : 하여간 그래서 그 미리 섬진강 다목적댐을 안 만들어 놨습니까? 영감 : 다목적댐이라니? 둘째 사위 : 네, 그래서 그 꿩 먹고 알 먹는 얘기죠. 그 댐의 물로 발전도 하고 이 간척지에 물을 대주니께 흐, 참말로 얼마나 좋습니까! |
1967 | ||||
4 |
경제 |
CEN0002282 |
장날풍경 |
(02:02~04:46) 시골에서 제일 먼저 서는 것이 쇠전 즉 우시장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여러 마을에서 모여든 크고 작은 소들, 농촌에서 소라면 제일 큰 재산의 하나이며 일하는데 있어서의 능률로 봐서도 여간 소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를 사는 사람들의 신중한 모습도 당연한 일입니다. 힘세고 살찐 놈은 물론이지만은 다리뼈나 등뼈도 만져보고 소의 나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빨까지 헤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마음에 들면 흥정이 벌어집니다. 비싸게 받자는 것이 파는 사람의 심정이라면 싸게 사자는 것이 사는 사람의 인정이니 타협이 잘 안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여기에서 거간이 등장합니다. 예부터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하는데 흥정을 붙이는 것이 거간의 직업이라 교묘한 수단으로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을 다 같이 만족시키면서 흥정을 붙이고 양쪽에서 구전을 받게 됩니다. 쇠전이 흥성거릴 무렵에는 다른 장에도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농사만을 짓고 사는 농민들에게 가장 구미를 돋우고 흥정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역시 어물 시장인가 봅니다. 그러나 거래하는 물건에 따라 장소를 나누어 자리를 잡고 있으니 양곡장, 채소장, 과물장, 포목장 등이 그것입니다. 이 밖에 특수시장으로서 약령시장과 수산시장도 곳에 따라서는 번창하고 있지만은 대부분에 시골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은 농민들이 손수 가꾼 농산물이 으뜸이고 외계에서 산출되는 해산물이라든가 도회지나 공장지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여러 가지 물건도 이 장을 통해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갓을 써야만 행세를 한다던 옛 풍속도 세태의 변화에 따라서 도심지에서는 보기 힘든 유물처럼 버림을 받고 있지만은 아직껏 시골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니 예부터 내려오는 풍속은 그리 쉽게는 고쳐질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
1960 |
번호 |
분야 |
관리번호 |
제목 |
영상해설 내용 |
생산연도 | ||||
5 |
문화 |
CEN0002788~CEN0002789 |
열반 |
(06:01~08:20) 불교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도 큽니다. 우리의 고유 신앙을 발전시키고 세련시켰으며 또한 화랑도라는 국민도를 이룩함으로써 호국불교의 전통을 세웠고 그 밖에도 원효대사와 같은 위대한 많은 학자를 낳아 학문적으로도 세계 불교 사상에 높은 탑을 세웠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대문화는 불교문화라고 할 만큼 불교가 우리의 문화에 공헌한 바 큰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미술문화는 불교를 떠나서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비롯된 종교요. 인도 문화는 서구문화와 동양문화가 합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우리 미술은 이 불교를 통하여 멀리 헬레니즘의 흐름과 중국 육조시대의 수법을 종합하여 우리의 풍토와 문화에 어울리는 새 경지를 열었던 것입니다. |
1964 | ||||
6 |
문화 |
CEN0002917~CEN0002918 |
초혼 |
(10:18~12:20) 죽은 애인의 혼과 만나는 여인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무용극이다. 죽은 연인을 그리워한 여인이 신령님께 연인과의 재회를 기원하자 무당의 도움으로 혼령을 만나는 장면이다. |
1965 | ||||
7 |
정치 |
CEN0002944 |
자유의 집 |
(00:12~01:25)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소로 알려진 판문점에 조국 통일을 이룩하려는 온 겨레의 염원을 상징하는 자유의 집이 세워져 지난 9월 30일 그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우렁찬 육군 군악대의 주악과 한국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우리 민요로 시작된 이 식전에는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대표 남철 소장을 비롯해서 유엔 참전국 대표들 그리고 200여 명의 내부 인사들이 모여 이 자리를 빛냈습니다. 지난 6월 25일 착공한 이래 총 작업일 수 31일 만에 준공을 본 이 자유의 집은 민간 기술업자 우림산업회사와의 기술 유대로 육군 제1201공병단 장병들이 세운 것입니다. 건물 앞에 을지문덕 장군의 동상이 서있는 이 자유의 집은 길이 약 115피트(ft), 넓이 약 26피트(ft)인데 건물 2층에는 상황 설명을 위한 휴게실, 전시실 등이 마련돼 있습니다. 또한 2층과 3층에는 조망대가 있어 판문점을 한 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돼있는데 앞으로 판문점을 찾는 관광객들을 포근하게 맞아들일 것입니다. |
1966 | ||||
8 |
문화 |
CEN0002303 |
한국교향 환상곡 |
(00:11~01:48) 한국의 역사 흐름을 표현한 한국 환상곡 연주를 담은 영상기록이다. 창덕궁 인정전을 배경으로 안익태가 지휘하고, 시립교향악단 및 방송교향악단의 연주와 서울연합합창단의 합창으로 한국 환상곡이 연주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
1960 |
출처-행정안전부
'문화,연예,방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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